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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허석

     

    독립운동가 허석은 1857년 4월 2일 경상도 의흥현 소수면 가곡(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집실마을) 128번지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허전과 어머니 순천 장씨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 허조의 후손이며 삼국유사면 화수리 입향조인 허민의 10대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그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이미 가세가 지극히 어려워져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줄곧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에 진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10년 7월 경술국치를 겪고 난 후 줄곧 망국의 한을 품고 있던 그는 특히 일본인들의 한국 이주가 매년 늘어나고 조선인의 이권이 침탈되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를 분개히 여겨 동포들에게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자 계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으로 통하는 마을 근처 도로 곁에 세워진 비석에 다음과 같은 일본의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항일 격문을 붙여 동포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충성이란 곧 목숨을 다하고,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도(道)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다르지 않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겠는가. 너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 일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라 잃은 백성이 어찌 아프지 않으며, 너희들이 어찌 원수가 아니겠는가. 너희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지만 우리에게 역량이 없어 어찌해볼 수 없구나.

     

     

    그후 1919년 고종황제가 붕어하자 그해 2월 고종을 모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낼 계획으로 터를 잡고 땅을 고르다가,  이 격문 활동으로 인해 허석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뒤 1920년 4월 22일 만기출옥 후 3일 만인 같은 달 24일 결국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한 그는,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위군에 「허석의사순국기념비」가 세워졌으며, 그의 후손인 허미미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한국 유도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 선수

     

     

    파리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 선수 프로필, 인스타그램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 선수  2002. 12. 19.경상북도체육회 ● 경력 ● 2024제33회 파리 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2023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유도 국가대표경상북도 체육회대한유도회  ● 수상 ●

    greenglow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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